그러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靑月의 이방인
무화과나무 씀
학생들 사이에서 오스카 블랙모어와 사와야마 미츠히코의 관계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로 여겨지고 있었다. 물론 두 사람 사이에 매우 특이한 일이 일어나거나 로맨틱한 정황이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묘하다’고 해야 할까. 적어도 오스카 블랙모어 쪽은 몰라도, 사와야마 미츠히코가 오스카 블랙모어에게 성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아이들이라도 알 수 있었다. 아니, 아이들이라 더 잘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와야마 선생님’의 어울리지 않는 미성숙한 감정에 대한 위화감을.
“오늘도 피곤하신가 봐요. 오스카 선생님.”
“…아, 감사합니다. 사와야마 선생님.”
예를 들면 이런 상황. 사와야마는 간단한 요깃거리가 든 비닐봉지를 오스카에게 건넸다. 최근 오스카는 제법 과로한 모양이었다. 야근하는 날도 잦았을뿐더러, 그 이외에도 ‘무언가’ 하고 있는 일이 많아 보였다. 물론 교사 대부분은 그의 개인사에 개입하지 않고, 조금 신경을 쓰는 사람마저 딱하다는 시선을 보내는 게 다였지만 사와야마는 달랐다. 오스카가 자차에서 졸고 있을 때면 종종 창문을 두드리며 오스카를 챙기곤 하였다. 사와야마가 특유의 접은 눈으로 웃으며 다가오는 걸 차마 외면할 순 없어서 옆자리 조수석을 종종 빌려주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였다. 그러니까, 지나가는 학생들 눈에는 두 사람이 굳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분리되어 대화를 나누는 광경이 목격되곤 한 것이다. 몇몇 학생들은 이상한 기류가 느껴진다고 생각했고,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을 터였다.
‘사와야마 선생님은 어떻게 내가 여기에 있는 걸 알고 있는 걸까.’ 같은 생각이 들 법도 했는데, 당시의 오스카는 너무나도 피곤해서,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 그에 대해 신경 쓰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자신은 피곤했고, 직장 동료는 그걸 가엾게 여겨 눈에 띈 자신을 챙겨주는 게 아닐까. 그 정도 안일한 생각을 했을까. 사와야마가 옆자리에서 삼각김밥 하나를 먹으며 자신을 면밀히 관찰하는 시선도 어쩐지 불편하지 않아 넘겨버렸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다 사와야마가 문득 입을 열었다.
“오스카 선생님, 혹시 겸업이라도 하고 계시나요? 다른 데엔 말 안 할 테니까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걱정되어서 그래요.”
“윽…….”
오스카는 저도 모르게 침음을 흘렸다. 쓸데없이 잘 대해준다 싶었더니 이런 질문을 하려고 그랬나. 다소 난감한 상황이었다. 사실 저는 유니버셜 네트워크 가디언즈라는 조직의 에이전트입니다,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리는 없는 건 그렇다 치고, 아무리 ‘오스카 블랙모어’가 이름난 소설가라 한들 현재 교직 생활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겸업을 한다는 건 다소 문제의 소지가 있는 일이 될 수 있었으니까. 눈치 빠른 사와야마라면 UGN의 일은 알 수 없어도 후자라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터인데, 구태여 한 번 돌려 말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오스카가 마땅한 대답을 해 주지 않자 사와야마는 음, 하는 소리를 내더니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조금 그늘진 차 안에서 보이는 눈동자가 어쩐지 빛을 띠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밝은 흰빛, 푸르다 싶을 정도의 서늘한 시선이 오스카와 잠시 마주했으나 눈을 깜빡이니 언제 그랬냐는 듯 똑같은 웃는 얼굴과 마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마치 일상과 같은 대화를 이어갔다.
“요즘도 소설을 쓰고 계시나요?”
“……예. 아무래도요. 그렇다고 교사 일을 우선시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네, 그래 보이세요.”
사와야마가 이런 식으로 오스카의 식사를 챙겨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던지라, 그는 익숙한 손길로 캔 커피의 뚜껑을 따서 오스카에게 내밀었다. 오스카는 떨떠름하게 그것을 받아들였다. 오스카가 보기엔, 사와야마는 학생들이 말하는 것과 다른 의미로 묘한 사람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다정해 보이기도 했지만, 때론 모든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도리어 모든 사람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한 그런 사람. 가끔은 그가 비오버드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설마 그렇겠어, 하고 가볍게 넘겨버릴 정도의 미약한 기색이었지만. 부드럽고 쉽게 대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 유독 자신에게만 그러는 것인지 묘하게 날카롭게 파고드는 말을 던지곤 하는 것이 가끔 곤란했다.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일에 충실한 것도 좋지만, 요즘 오스카 선생님은 너무 피곤해 보이세요. ‘다른 일’은 조금 쉬는 게 어때요?”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사와야마 선생님.”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뜻이로군요.”
오스카는 캔 커피를 홀짝이며 사와야마의 시선을 피했다. 입술이 마르는 기분이 들어서 목을 축일 수밖에 없었다. 사와야마를 보고 있지는 않지만, 그의 시선이 여전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 때로는 서슬 퍼렇게 보이기도 하는 시선이. 조금 집요한 질문이 이어졌다.
“역시 조금은 쉬어가도 괜찮지 않을까요? 어째서 그러지 않는지, 여쭤보아도 될까요?”
“저 자신을 구성하는 요소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군요. 정체성이라 해야 할까요?”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죠.”
짧은 문답이 지나갔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소설을 쓰는 것, 언어를 다루는 것은 오스카 블랙모어의 생애와 다름없는 일이었다. UGN 에이전트, 나아가 오버드 ‘네버모어’ 역시 숨길지언정 부끄럽지 않은 자신의 일부였다. 그 이외에도 많은 자신을 설정하는 정체성이 있었다. 한 가지 꼽자면 이 동북아시아의 섬에 떨어져 있어도, 거주하는 미국으로 돌아가도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든가. 하나를 떼어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을 합치고 퍼즐처럼 조립하고 나서야 오스카 블랙모어가 될 수 있었다.
“선생님이 선택하신 길이라면 제가 말릴 순 없겠네요.”
사와야마는 특유의 머쓱해 보이는 무해한 웃음을 지으며 조수석의 문을 열었다. 곧 점심시간이 끝날 테니 돌아가야 했다. 오스카 역시 자리에서 슬슬 일어나려 했을 때 사와야마는 무언가 떠올렸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호명했다.
“오스카 선생님. 오늘도 야근하실까요?”
“아마도요.”
“마침 저도 일이 있어서. 밤에 잠시 보실래요?”
“음……? 네, 알겠습니다.”
무엇 때문에 보겠다고 하겠다는 건지 전혀 예측이 가지 않았으나 별달리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인사하고 말았다. 오스카는 생각했다. 사와야마는 기묘한 사람이다. 하지만 더 기묘한 현상은, 그럼에도 사와야마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 자신 그 자체었다. 그냥 촉이 좋은 다정한 사람이니까 그런 걸까, 하고 넘어가고 말았지만. 어쩌면 그렇게 넘기고 싶었던 걸지도 몰랐다. 어딘가 익숙한 애정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날 밤,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사와야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사와야마는 교무실에 없었다. 대체 무슨 할 일이 있기에 교무실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으나 오스카의 담당도 아니었기에 그저 다른 업무가 있겠거니,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또각또각, 위층 계단에서 구둣발 소리가 들렸다. 사와야마였다.
“늦어서 죄송해요, 오스카 선생님.”
“아닙니다, 사와야마 선생님. 그래서 볼 일이란 건……?”
“아아. 옥상 쪽으로 와 주실래요? 마침, 확인하고 오는 길이거든요.”
“옥상이요……? 알겠습니다.”
안전상의 문제로 야간에는 반드시 닫아두는 옥상에 웬일로 가자고 한 건지. 오스카 자신은 아무래도 오버드라 육체적인 손상은 오지 않겠지만 이 작은 사람은 어떨지 모르는데. 사와야마가 위험한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이상하게도 그에 대한 의심보다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두 사람의 발소리가 야밤의 복도에 울렸다. 사와야마가 웃는 얼굴로 옥상의 문을 열었다. 평소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어딘가 기대하는 것 같은 천진난만함이 순간 보인 듯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달이 있었다. 보름달이 두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오늘따라 참 커다랗고 둥근 달이 선명하게 하늘 정중앙에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이상 현상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저 달은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고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고, 그저 평소보다는 조금, 선명하고 커 보일 뿐이었다.
“이 건물 옥상에 있으면 가끔 달이 잘 보이는 날이 있거든요.”
“아, 그런 거였군요.”
사와야마가 설명을 덧붙이자, 오스카는 완전히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굳이 달을 보는 것이 자신과 할 일이었나. 의문에 질문을 뒤늦게 덧붙였다.
“이곳에 저를 데려온 이유가 뭘까요?”
사와야마는 먼저 달에 가까이 걸어가다 오스카가 있는 쪽으로 뒤돌았다. 달빛이 역광이 되어 사와야마를 비추고 있었다. 참 찬란한 빛이었다. 덕분에 사와야마 쪽은 더욱 어둡게 보여, 표정 하나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냥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그냥요?”
“음, 이런 곳도 학교에 있다고 알려드리고 싶었다고 할까요.”
“아, 그런 거군요.”
검은 그림자나 다름없는 사와야마가 입을 뻐끔거리는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그럭저럭 이어졌다. 그렇군. 그런 소문이 돌면 학생들이 밤까지 남아 있을 수도 있으니, 정보를 알게 된 것은 좋은 일이다. 오스카는 그렇게 생각하며 옥상의 문에 기대어 사와야마와 그 뒤에 있는 달을 바라봤다. 어쩐지 그 정도 거리감이면 충분한 것 같았다. 더 가까이 가고 싶지는 않았다. 비록 그 달이, 마치 유명한 관용구처럼……. 오스카는 중얼거렸다.
“……달이 참 아름답군요.”
“아하하, 고백인가요?”
“그럴 리가요. 사전대로의 의미입니다. 애초에 나츠메 소세키가 ‘달이 아름답네요’를 ‘사랑해요’ 의 번역으로 제시했다는 것도 와전된 이야기라는 설도 있으니까요.”
“그럼, 원래 제시한 번역은 뭔데요?”
사와야마의 말에 오스카가 전공을 살려 흔히 퍼진 오정보를 정정해 주자 도리어 사와야마는 질문했다. 오스카는 그 말이 뭐였더라, 잠시 고민하다가 금방 정보를 알려주었다.
“…나츠메 소세키 선생의 시대에는 ‘달이 아주 푸르구나’라는 유행가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달이 아주 푸르구나’라고 소세키 선생께서 제시하신 것이 현대에서는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워졌으므로, ‘달이 아름답구나’로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러자 사와야마는 눈웃음을 지었다. 낮에도 본 눈빛이었다. 서슬 퍼런, 파란, 어쩌면 달을 닮았을지도 모르는 눈빛이 오스카에게 향했다. 세상이 잊어 다시 정의하기도 어려워진 그 눈이 휘어졌다. 사와야마는 천연덕스레 대답했다.
“정말요? 몰랐어요. 오스카 선생님은 박식하시네요.”
“왠지 거짓말 같은데요.”
“설마요.”
오스카의 대답에 사와야마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고 말 뿐이었다. 문득 사와야마의 형태를 한 검은 것이 오스카에게 손을 뻗었다. 가까이 오라는 듯이. 어쩐지 그 손을 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맨 먼저 들었다. 사와야마의 입이 여전히 뻐끔거리는 듯했다. 완연한 어둠 그 자체가 된 그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오스카 선생님. 저는요. 이 정도 거리면 달로 향할 수 있을 것 같이 느껴져요.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선생님도, 저도, 다른 사람들도 어느 날 달이라는 세상으로 가는 거예요. 그러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사와야마라는 개인도 달의 그림자에 잠긴 것처럼 보였고, 그 자신의 그림자도 오스카를 향해 뻗어졌다. 사와야마의 질문에 오스카는 잠시 고민하듯 턱을 만지다 대답했다.
“흠, SF 소설의 주제가 될 법하군요. 제 생각은, 답하자면……. 그렇게 한다 해도 여전히 갈등은 생겨날 것이기에, 끝이 좋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설령 우리가 모두 같아진다 하더라도 어딘가는 다를 것이며 그 다름을 기점으로 선을 그을 테니까요.”
“그런가요? 아쉽네요.”
그제야 사와야마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오스카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컴컴한 곳에 있던 사람이 빛에서 멀어지자, 오히려 사람의 얼굴을 한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나 인간적이라 느낀 나머지, 오스카는 사와야마에게 물었다.
“사와야마 선생님은 달로 떠나고 싶습니까?”
“어쩌면요. 하지만 저 혼자서는 싫어요. 한 명 정도는 같이 가 줄 사람이 필요할 것 같네요.”
“한 명 정도요.”
“네. 그 정도면 갈등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잖아요. 오스카 선생님의 말씀이 맞아도요.”
본래라면 그 말에 ‘안일한 생각입니다’라고 대답해야 했으나, 어쩐지 오스카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사람이 어딘가 부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평생을, 그 ‘한 명’을 찾지 못해 떠돌며 고향으로 가지 못하는 철새같이.
“그래도 오스카 선생님 덕에 하나 알았네요. 원래는 그런 표현이었군요. ‘달이 참 푸르네요’ 라.”
사와야마는 멀어진 달에게서 고개를 돌려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날의 달이 문득 유독 차가운 빛을 띠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스카는 말도 안 되는 공상을 했다. 어쩌면 사와야마 미츠히코는 달에서 온 사람이 아닐까. 그래서 달빛과 닮은 눈빛을 하고 있는 걸까.